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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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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강 / @galanthus03
오비완은 이놈이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잔뜩 뿔난 머리통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또! 또 그런 눈으로 보시고!”
머리통이 소리를 빽 질렀다. 코앞에 들이닥친 머리통에서 은은한 두스베리 향이 났다.
“내 말 무슨 뜻인지 마스터도, 마스터도 알잖아요!”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샴푸의 베리 향이 난다. 오비완은 머리통을 가만 올려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알면, 알면서….”
울먹거리던 머리통은 기어코 푹 수그러들었다. 오비완이 이 작은 머리통이 시무룩해질 때마다 마음 한켠이 시큰했다. 오비완은 나름대로 아이에게 엄격해지려 했지만 아이가 풀이 죽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약해졌고, 특히 오비완 때문에 속상해할 때면 오비완은 아이를 어르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과 싸우느라 애를 썼다.
오비완이 자신의 마음을 지그시 누르는 사이, 푹 숙여진 머리통은 휙 몸을 돌려 터덜터덜 가버렸다. 오비완은 입술 한 번 달싹이지 않고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올라오는 한숨을 속으로 들이 삼켰다. 혹여라도 자신의 한숨 소리가 아이에게 들린다면, 아마 밤새 속상해하며 울 테니까.
오비완은 몸을 깨끗하게 씻고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미처 확인 못한 전언이 있는지 확인하고 내일 일정을 정리하며 침대에 눕기 전 이부자리를 한 번 더 정돈했다. 임무가 없는 날, 자신의 쿼터에서 잠드는 날이면 언제나 이래왔다. 몸을 씻고, 물건을 정리하고, 할 일과 잠자리까지 정돈하고 나면 차분해진 마음으로 누울 수 있었다. 고민해야 하는 일은 모두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 무던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는 게 오비완의 하루 마지막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도통 마음이 정돈되지 않았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몸을 누이며 오비완은 작게 탄식했다.
‘오, 아나킨. 오스틴 의원의 결혼식에 널 데려갔던 건 네게 대외적인 행사를 보여주려는 목적이었단다. 그런 곳에선 어떤 말을 나눠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지 네게 보여주려고 말이다. 제다이에 걸맞는 범절을 네게 가르쳐주려고 데려간 거였지, 네게 그런 바람을 넣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물론 결혼식이 굉장히 낭만적이고 아름답긴 했다만.’
아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가,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가, 마침내 오비완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깨닫곤 새빨갛게 얼굴을 붉혔다.
‘지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이는 성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제가 지금, 결혼식 구경하곤 들떠서 이러는 거라 말하는 거예요?’
오비완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아이는 입술을 바르르 떨다가,
‘제가 낭만적인 구경거리에 취해서 오비완한테 사랑 고백한 거라 생각하냐구요!’
정말 화난 얼굴로, 그리고 그보다 더 상처받은 목소리로 오비완에게 소리쳤다.
가슴이 답답했다. 나와야 할 숨이 나오지 못하고 폐부에 고인 것처럼. 오비완은 빠져나오지 않는 숨을 뱉어내고 싶어 몸을 뒤척였다.
그 뒤로는 뻔하디뻔한 말다툼이었다. 아이는 상처받았고, 부끄러움과 서러움이 한 번에 몰려와 분을 참지 못했다. 오비완은 그런 아이에게 15살 더 많은 스승으로서 할 법한 대꾸를 늘어놓았다. 누가 보기에 부끄러울 만큼 유치하고 뻔한 말다툼이었다.
한 마디 져주지 않는, 제 마음을 끝없이 치기 어린 착각으로 부정해버리는 스승의 고집에 아이는 결국 입을 다물어버렸다. 정확히는 입담으로 유명한 제 스승을 맞받아칠 재간이 바닥나버렸다. 말 못 하게 된 아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그 상처받은 눈으로 스승을 빤히 쳐다봤다. 오비완은 그 눈빛 때문에 자꾸 튀어나오려는 마음을 꽉 내려 누르며 더 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럼 마스터한테는 저한테… 그런 마음이 일절 없다는 거네요.’
물기 어린 목소리가 더듬더듬 창백한 목울대를 비집고 나왔다. 오비완은 아이의 목소리만큼이나 가슴이 떨렸지만,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오비완은 절 사랑하지 않아요?’
‘아나킨, 당연히 너를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 너는 내 파다….’
‘아 진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눈물이 한 움큼 바닥으로 떨어졌다.
왼쪽으로 누운 자세가 불편하면 오른쪽으로 돌아눕자. 그것도 불편하면 바른 자세로, 여전히 불편하면 왼쪽으로 다시.
저를 사랑하지 않냐고? 이보다 괘씸한 말이 어디 있는가. 저에게 사원에서 배급되는 기름 냄새의 샴푸가 아니라, 달큰한 두스베리 향 샴푸를 사다 주는 게 누구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비완은 어딘가 편치 않았다. 절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제다이가 과일 향의 샤워용품이라. 안 될 거야 없지만, '그' 오비완 케노비가 코러산트에선 파는 곳도 몇 없는 샤워용품을 굳이 산다니. 제 파다완을 위해서. 알만한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놀라워할 것이었다.
왜 굳이 두스베리 냄새가 나는 샴푸를 파다완에게 사주는가. 내면의 오비완이 고개를 돌리며 답한다. ‘아끼는 제자에게 그 정도도 못 해줍니까.’
제자를 무척 아끼나 보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답한다. ‘마스터가 파다완을 아낌직함 할 만큼은 아끼지요.’
부모의 마음 같은 것? 뻔뻔하게 답한다. ‘저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나 봅니다.’
아니, 오비완은 이러한 자문자답이 왜 불편한지 알고 있었다.
1년 전, 제 파다완과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사원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행성의 의원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으니 며칠 묵고 가길 바라는 청이었다. 오비완은 도리를 했을 뿐이라며 거절하려 했으나, 임무 중 부상 입은 파다완이 피곤해하는 기색이자 하룻밤만 묵고 가기로 했다.
오비완이 맞지 않는 사치는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 탓에 적당히 아늑하고 좋은 방을 대접받았다. 그 정도도 제다이에겐 호화스러운 수준이었지만. 파다완은 신기한지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했고 오비완은 그런 제 파다완을 구경했다. 파다완은 부상 때문에 아픈 것도 잊었는지 부산스럽게 오비완을 불러댔고, 오비완은 그 부산스러움이 피곤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이는 욕실 문을 열자마자 탄식하더니 ‘상처만 아니면 욕조에 들어가는 건데!’ 하고 외쳤다. 그러곤 오비완이 욕조는 절대 안 된다고 한마디 하기도 전에 욕실에 쏙 들어가 버렸다. 스승에게 먼저 씻을지 묻지도 않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오비완은 슬쩍 미소지었다.
한 30분간 조용했을까, 욕실 문이 벌컥 열리자마자 파다완의 재잘대는 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마스터, 여기 비누 향기부터 달라요! 막 과일 냄새가 난다니까요!’
제 머리에서 과일잼 향이 나요, 그렇게 말하며 제 머리카락 향을 맡아보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던 모습.
짧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을 리도 없는데 고개를 돌리다가 브레이드가 얼굴을 탁 치자 웃음을 터트리던 모습.
아직 앳된 뺨과, 시원한 입매, 웃음 때문에 반짝이는 눈.
오비완은 멍하니 보다가 문득 저 얼굴이 저렇게 깊었던가 생각했다. 날이 다르게 키가 크며 늘씬해지는 몸과 다르게 아이의 얼굴은 아직 앳된 느낌이 있었다. 저곳만 젖살이 안 빠지는지 여전히 부드러워 보이는 뺨을 보며 오비완은 그래도 제 파다완이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언제 저렇게 눈이, 입매가, 웃을 때 살짝 파이는 뺨이, 앳된 살을 털어내고 깊어졌는가.
웃고 있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혼자 도리질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아이건만, 마주친 그 눈이 너무 깊어 오비완은 움찔 떨었다.
오비완은 눈을 질끈 감으며 이를 악물었다. 눈을 감았건만, 어디서 비추는 빛이길래 눈꺼풀 뒤에서도 보이는지.
자꾸만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는 마스터는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해요?’
오비완은 화가 났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다니, 바보가 아니고서야 뭔가.
어느 습지대에서 분리주의자 소탕 임무를 마쳤을 때, 지형 탓에 사령관이며 부대원이며 할 것 없이 다들 진흙 범벅이 되어 꼴이 엉망이었다. 특히 저 혼자 앞서 뛰어다닌 파다완 놈은 어디 진흙을 뒤집어쓰고 온 꼴이었다.
진흙이 잔뜩 묻은 얼굴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사령관에게 무언가 말하던 파다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오비완을 발견했다. 파다완은 오비완에게 다가오다가 문득 멈춰 서더니, 갑자기 소매로 제 얼굴을 열심히 문질러댔다. 얼굴을 닦아내려는 양 싶었지만 얼굴만큼이나 엉망인 소매라 별 소용 없어 보였다. 아무리 얼굴을 문질러도 여전하자, 파다완은 오비완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 얼굴. 자신을 보자 급히 닦아내던, 여전히 진흙에 엉망이던, 머쓱해 하며 웃던,
아나킨.
사랑이 뭔지 아냐고 물어보다니, 괘씸한 것. 그건 너였잖니. 나한테, 머쓱하게 웃던 건 너였잖니. 네가 너를 내게 보여줬잖니. 그런데도 내가 사랑이 뭔지 모를 거라 생각했으면 정말 바보라고.
피곤해서 되려 눈이 떠졌다. 어슴푸레한 창문을 보고 몇 시간 자지 못했음을 알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아도 될 시간이었으나, 오비완은 깨어났는데 침대에서 밍기적거릴 사람이 아니었다. 피곤한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가 뺨을 감쌌다. 오비완은 가만 눈을 감고 새벽 공기가 얼굴의 부은 열을 앗아가길 바랐다. 새벽 공기는 약간 시렸고 약간 촉촉했다. 그래서 시리고 촉촉한 모든 것이 가지는 냄새를 새벽 공기도 가지고 있었다.
오비완은 살풋 눈을 떴다. 오비완은 향기를 사랑하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었다. 향기를 사랑하게 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또한 알고 있었다.
오비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새벽 공기의 축축함이 몸속에 찰랑찰랑 들어찼다.
소리 나지 않게 방문을 열자 이불 사이로 짧은 곱슬머리가 삐죽 보였다. 오비완은 문소리만큼이나 조용히 그 머리맡에 다가와 앉았다. 이불에 푹 파묻힌 얼굴이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눈언저리가 한없이 깊었다.
오비완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아나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끝에 부슬부슬한 감촉이 올라왔다. 오비완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아나킨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너는 나의 파다완이고,
너는 나보다 15살이 어리며,
나는 너가 9살일 때부터 너를 키웠잖니.
오비완은 어젯밤부터 몇 번이고 반복한 소리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같은 소리를 외는 이것이 타이르는 말인지 기도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나킨의 눈꺼풀이 움찔 움직이자 오비완은 잽싸게 손을 거두었다. 천천히 뜬 눈은 몇 번 껌뻑이더니 오비완을 살며시 올려다봤다.
“…마스터?”
“…아나킨.”
아나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오비완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몇 시예요?”
“아직 새벽이란다. 더 자렴.”
고른 숨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오비완의 손도 다시 아나킨의 머리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짧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흐트러진 브레이드 쪽이었다. 아나킨의 브레이드를 쓸어보며 오비완은 생각했다.
새벽이 밝아오는 걸 피할 수 없듯이, 자신 또한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될 거라고.
나의 새벽, 나의 밝아오는, 내 가슴을 밝혀내는,
“아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