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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방비하게 노출된 등은 아가미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천천히 차오르는 숨을 따라 살갗이 달라붙었고 그 위로 정교한 뼈들이 도드라졌다. 빛이 머물고 간 자리는 체모가 옅어 하얗고 금빛으로 반짝였기에 그것은 어떠한 기괴하고 신비로운, 인외의 존재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거죽을 뚫고 푸르게 돋아난 핏줄을 더듬으며 아나킨은 그 위로 날개가 돋아나는 상상을 했다. 경박스럽지 않은 무게는 꼭 심해를 헤엄치는 인어의 비늘만큼이나 육중하고 미끄러울 것이다. 상념이 상념에 꼬리를 물고 뒤따라오는 당신도 언젠가 나를 떠나버릴까, 하는 물음. 등허리까지 길게 이어진 푸른 산호초는 꼭 거기서 끝이 난다.

 

 

 

 

 

<    飛蓋.   >

 

​ㅣ

by. Hazel / @_anaobi_

 

 

 

 

   좋아하는 마음도 오래 곪으면 상처가 된다. 아나킨은 오비완의 가늘게 뻗은 목덜미를 옆눈으로 흘기다 목을 축였다. 차곡히 쌓아뒀던 고백의 언어에서는 물비린내가 나고, 그건 마치 여름을 오래 묵혀두고 얇게 말려 편듯한 향이다. 셔츠 한 장만 걸친 아나킨과 달리 오비완은 타바드까지 야무지게도 입고 있었고 그의 시선이 몇 번을 와 닿는 동안에도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는다. 설마 마스터가 되면 저런 것도 할 수 있는 건가. 아나킨은 혀끝에 싱거운 생각 하나를 얹어두었다가, 뱉어내었다.

 

 

   “안 더워요?”

 

 

   전혀. 오비완은 두 손을 허리 뒤로 짚은 채 대답한다. 테라스의 앞편을 차지하고 선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여전히 이쪽을 돌아보지 않는 채로,

 

 

   “명상에 좀 더 집중하렴, 영 파다완.”

 

 

   담백하게 내뱉어지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하다못해 본딩을 통해서라도 감정을 내색한 거나 그런 일 없이, 존경해 마지않던 그의 평정심이 오늘만큼은 고깝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당신도 나를 생각해주었으면 하는데, 내 고백 따위는 고작 그 정도의 무게였나 싶어서.

 

   마음이 들뜨거나 초조해질수록 몸은 자연스레 기울었고 느린 발걸음과 달리 아나킨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분이 된다.

 

 

   “어제저녁의 일 때문에 이러시는 거예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덮어두자, 다짐했던 일을 입에 올린 것은 심술이기도 했고 아집이기도 했다. 충동적인 고백에 대한 대가를 가만히 견디는 것은 성정에 맞지 않는 일이다.

 

   ‘널 이성으로 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란다.’ 마주쳤던 눈동자는 힐난하듯이 저를 보았고, 굳게 다문 입술은 변명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왜 하필 자신이냐고 묻는다면 아나킨 또한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으리라. 문득 가슴에 아렸으므로 그것이 사랑임을 알았다. 충분히 강하다는 걸 알았지만 지켜주고 싶었고 얼른 따라잡아 곁을 차지하고 싶었다. 혹은 더 오래전, 처음 그 날개를 바라보았을 때부터…….

 

 

   “마스터.”

 

 

   어깨너머로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아나킨은 아주 어릴 때 보았던 그의 위태로운 등을 떠올린다. 하늘은 넓었고, 그것을 짊어진 어깨는 한없이 작아,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날아갈 듯 성마른 몸과 물방울을 떨궈내듯 투명하게 돋아나는 날개까지.

 

 

   “가지 말고 제 곁에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임무에 관한 이야기였으나, 청유형의 말과 다르게 손은 그의 허리를 감싸고 붙든다. 그 속에 담긴 애원과 갈망을 오비완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동작도 취하지 않고, 어떤 감정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처럼 군다. 아나킨 얼굴이 목덜미 위로 천천히 내려앉을 때까지 눈을 감은 채, 입술이 목 위를 지분거리는 행위를 그저 감당할 뿐이다. 차라리 꾸짖어주기를 바랄 정도로.

 

   들숨에 섞여드는 가지런한 편백 향과 목 뒤로 쏟아지는 머리카락들이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아롱거렸다. 그러나 곧바로 밀쳐내지 않는 것은 그가 다정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을 저지르든 용서해주리라는 얄팍한 관용과 무자비한 거절에 가깝다.

 

 

   “너답지 않게,”

 

 

   붙들고 늘어진 손가락 하나를 떼어내며 당신은 참 다정한 모습으로 웃어, 어떠한 항변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마주친 시선은 낯뜨겁고, 그 표정 또한 소스라치게 희고 붉다.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할 만큼. 당신을 모르는 자였다면 필시 그랬을 것이다.

 

 

 

 

 

**

 

 

 

 

 

   명상에나 좀 더 집중하렴, 영 파다완.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영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오비완은 잔뜩 날을 세워 힐난할 수 없었다. 아이가 어떠한 얼굴로, 어떠한 목소리로 고백했는지를, 그때의 눈빛이나 본딩으로 흘러드는 감각은 어찌나 달았는지가 떠올라 마음이 자꾸만 흐트러졌다.

 

 

   가지 말고 제 곁에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너의 목소리는 눈을 감고도 만져질 만큼 사무치고도 서럽다. 아나킨의 곱슬거리는 머리가 목 아래에 와 닿을 때가 돼서야 오비완은 숨을 멈췄다.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깍지 쥔 손가락이 맞닿아, 체온이 살갗을 파고든다. 부드러운 온기는 떨쳐내고 싶은 동시에 간절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너답지 않게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한다던 그 말은 오래도록 흔적을 남겨서. 가만히 놔둔다면 살라놓은 불씨처럼 점점 그의 마음을 어지럽힐 테다. 하지만 아나킨을 위해서라도 그는 마음을 허락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것 중 유일하게 귀한 것, 제가 이끌어줘야만 하는 아이. 필시 그래야만…….

 

 

   “하지 못하는군, 집중을.”

 

 

   상념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오비완은 잠에서 깨어난 듯 어지러운 감각으로 제 앞에선 두 명의 제다이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지금의 저는 꽤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다녀오는 길인가, 안시온에?”

 

 

   오비완이 고개를 끄덕였고, 윈두가 말을 이어받았다.

 

 

   “자네와 영 스카이워커, 둘이서 아미달라 의원을 호위하라는 카운슬의 결정일세.”

 

   “아미달라 의원을요?”

 

 

   오비완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나부의 여왕이었던 파드메 아미달라를 떠올렸다. 강인하고 우아한 인상 위로 제 첫사랑이라며, 종종 그 이름을 입에 담던 아나킨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것을 기회라고 여기면서도, 입안에 고여 뱉어내지 못하는 것은 치사량의 미련이자 그 날 버리고 오지 못한 감정의 한 파편이다. 뺨 위로 가볍게 얹어진 손이 턱을 쓸고, 대답을 유보하는 오비완을 요다는 특유의 맑고 지혜로운 눈동자로 들여다본다. 영혼을 꿰뚫는 눈이다.

 

 

   “떠날걸세, 영 스카이워커는.”

 

 

   오비완도 그 사실을 알았다.

 

 

 

 

 

**

 

 

 

 

 

   오비완은 쓰라려 오기 시작하는 다리를 침대 위로 올렸다. 문지르는 무게만큼 낮아져 거즈 안쪽까지 스며든 연고가 살갗에 달라붙자 화끈거린다. 뻐근하게 당겨오기 시작한 부분을 힘껏 눌러주다, 문득 그 느낌조차 견디지 못하고 아프다며 찡얼거리던 아나킨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탓에 오비완은 실없이 웃었다.

 

   비집고 올라오는 입꼬리를 손끝으로 툭툭 내리며 가다듬던 시선은 아나킨의 의수로 닿자, 제법 울적해진다. 솜씨 좋은 향해사는 거센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라지만 오비완은 늘 그 파도가 쓸려가고 남은 자리를 마주하는 것이 무서웠다. 바로 지금처럼. 오비완은 손을 들어 금속의 매끄러운 부분을 쓸었고, 손가락과 맞닿은 면은 떼어내어도 온기가 남지 않을 정도로 차갑다.

 

   낯설고도 무거운 감촉은 꼭 제 잘못인 것 같았고 실로 그러했기에, 오비완은 숨을 낮게 몰아쉬었다. 싸늘한 밤공기는 심장을 꿰뚫듯이 스쳐 지나간다. 두쿠와의 전투에서 아나킨은 팔을 잃었다. 그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특유의 그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미소 아래로 감정을 감췄지만.

 

   아나킨이 아직 짧은 팔다리를 휘두르던 시절, 단독 임무를 나간 오비완이 다쳐들어온 일이 있었다. 그러나 부러 손을 쓰기에는 아쉬울 정도의 가벼운 상처였고, 하루만 쉬면 나아질 거란 생각에 내버려둔 채로 잠들었던 오비완은 다음날 코를 찌르는 박타 향과 함께 아침을 맞아야 했다. 화끈거리는 양 볼에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는데, 그때 그 조그만 머리통이 저를 내려다보며 양손에 거즈를 잔뜩 든 채로 안절부절해 하고 있었다.

 

   자그마하던 모습이 눈가를 아른거려 떠나지 않는데, 이제는 제법 의젓해진 모습의 제자가 오비완은 자랑스러우면서 한편으로 떫었고, 우습지도 않았지만 웃음이 났다. 그것은 달이 밝은 밤이 기묘할 만큼 고요하고 또한 서늘한 탓이라 생각하며 오비완은 고개를 들었다. 호흡을 토해내어도 온기가 남을 만큼. 애써 눌러낸 감정은 눈가에 시큰거리는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과 함께, 너는 자라나는 중이다. 오비완은 줄곧 외면해왔던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두 사람이 살기에는 퍽 좁아진 쿼터에서, 이른 잠에 빠져든 아나킨의 머리칼을 쓸어주다 실없는 생각에 잠긴다. 너는 언젠가 내 곁을 떠날 테지. 뱀이 허물을 벗고 새가 둥지를 떠나듯, 그렇게.

 

   예상했던 미래였으나 손을 올리기 버거워질 때쯤 나는 덜컥 겁이 났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른 채 두려워했어. 너의 너른 어깨나 굵어진 목소리가 귀에 들어와 박히고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낯설게만 느껴지지. 너는 훌쩍 커버린 몸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나는 그 온기를 애써 외면하려다, 되려 곱씹게 되어버려서…….

 

   넋두리처럼 시작된 혼잣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아나킨이 어깨를 끌어당겼기에, 중심을 잃은 몸이 침대의 끝으로 밀려났다.

 

 

   “왜 이제서야,”

 

 

   오비완은 아나킨을 올려다보았다. 그늘진 곳에서도 그의 눈동자는 파랑이다. 쏟아지는 폭우를 닮은.

 

   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기도, 차라리 후련해 보이기도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붙들어진 어깨를 두고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아이처럼 군다. 조금만 고개를 더 숙이면 이마와 이마가 맞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하지만 아나킨,”

 

 

   사랑이 끝이 나는 순간이 영영 오지 않길 바랐기에, 사랑이 아니기를 바랐어. 그것이 헛된 희망임을 알면서도 예나 지금이나, 손에 쥔 것이 많지 않은 오비완에게 희망은 그의 전부였기에.

 

 

   “때로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는 법이란다.”

 

 

   널브러지듯 침대 위로 길게 늘어진 브레이드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하늘과 바닥의 경계를 그은 채 매달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형상이다. 결국 바라든 바라지 않던 사랑은 그들은 떠날 것이라, 오비완은 아주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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